“사회에 진 빚 갚으며 인류를 보호하는 4차 산업혁명에 기여할 것”

▲ 윤태식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YOONAM Tech 연구소장은 인류의 숙원이던 ‘AI 인증엔진’을 옥중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YOONAM Tech 연구소를 세우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회에 진 빚을 갚으면서 인류를 보호하는 4차 산업혁명에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국뉴스=고병용 기자]윤태식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YOONAM Tech 연구소장은 지난 1999년 12월 디지털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벤처기업 ‘패스21’을 창업한 후 AP통신, 로이터통신, CNN을 통해 당시 개발된 패스폰으로 인터넷을 즐기고 지문을 패스워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제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1년 세계 최대 지문인식 기업인 미국 베리디컴을 전격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해외언론들은 “개구리가 뱀을 삼켰다”는 헤드라인으로 긴급 타전하기도 했다.
 
스티브잡스가 타계한 후 애플 CEO 팀쿡도 2007년 애플이 내놓은 iPhone은 한국에서 개발된 패스폰 기술이지만 사정상 상용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스티브잡스가 이를 벤치마킹했다고 고백하여 국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이른바 ‘수지김 간첩조작’ 사건으로 구속돼 무려 15년 6개월의 옥중생활을 끝내고 최근 사회로 돌아왔다. 그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참회의 시간을 보내면서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면서 또 법무부 제12공공직업훈련소 정규훈련생으로 선발되어 컴퓨터응용기계학과 산업기사 3년 과정을 수료했으며 인류의 숙원이던 ‘AI 인증엔진’을 옥중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YOONAM Tech 연구소를 세우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사회에 진 빚을 갚으면서 인류를 보호하는 4차 산업혁명에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본지는 최근 언론사 최초로 윤태식 연구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대중들에게 아직 IT융합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것 같은데?
 
▶IT산업은 융합의 시대를 맞이했고 휴대폰은 카메라의 대용품이 됐다. 최신형 TV는 인터넷 서핑 도구가 됐고 손목시계는 휴대폰을 대신하고 있다. IT융합기술은 여러 기업이 협업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국내 IT기업들이 융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동안 IT기술은 산업의 효율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IT융합은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혁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혁신은 속도다. 손자병법에 ‘세찬 물결은 무거운 돌까지도 떠내려 보낸다’는 말이 있다. 속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반대로 속도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반드시 도태된다. 시대가 변하면 고객의 욕구도 바뀐다. 특히 지금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고객이 요구하는 모바일을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혁신의 정의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경영에 대한 답은 주로 어디서 구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을 옥중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실패했던 사람이지만 다시 도전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한 후 흘렸던 피눈물 때문에 실패에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실패했던 길을 다시 가지 않아도 되는 값진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다. 실패도 스펙이라는 걸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자가 승리한다’였다. 포드가 대규모 자동차 조립라인을 만든 것은 빨리 차를 사길 원하는 고객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포드의 효율과 속도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980년대 고객들은 제대로 만들어진 물건을 갖고 싶어 했다. 장인정신을 강조한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이 성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요타의 품질 경영도 내가 추진할 제1원칙 중 하나다.
 
▲ 윤태식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YOONAM Tech 연구소장은 지난 2001년 이른바 ‘수지김 간첩조작’ 사건으로 구속돼 무려 15년 6개월의 옥중생활을 끝내고 최근 사회로 돌아왔다.

-치열한 모바일 시장과 핀테크 부문의 후발 주자인데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은?

▶기업 경영에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적절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해 보면 리더들은 형식적으로 경영을 했고, 직원들은 보여주기 식으로만 일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은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고객 중심 경영이란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면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이라는 나무의 토양은 고객이다. 모바일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지구촌에서 모바일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무엇을 가장 염려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것이 고객 중심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은 분실 위험과 사생활 노출 등 치명적인 약점으로 강력한 보안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이 <AI 인증엔진>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AI 인증엔진>은 휴대폰을 분실해도 모든 정보를 보호할 수 있으며 해커의 공격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특히 IT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디, 패스워드, 공인인증서, OTP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게 특징이다. 더 나아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TS Phone>은 원터치로 화면 크기를 300%까지 슬라이딩 Wide 방식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이런 모바일이 고객 중심의 혁신적인 <TS Phone>이다.
 
내 목표는 모바일을 만드는 것보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바일 시장이 포화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포화 상태인 것은 모바일 시장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포화일 뿐이다. 고객들이 원하는 혁신 모바일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뜻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핵심 가치(value)가 있어야 한다. 나는 혁신을 핵심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는 어떻게 진출할 생각인가?
 
▶각국마다 다른 전략을 쓸 것이다. 미국인은 ‘미국산(Made in USA)’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 연구소와 현지 법인을 세울 것이다. 브랜드에 대한 요구가 강한 유럽 시장에는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으로, 자국 브랜드에 대한 소비가 강한 일본에는 현지 법인과 협정을 맺는 방식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사람을 키우는데 주력하겠다는 이유?
 
▶미래의 재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엇(what)’이 아니라 ‘누구(who)’이냐가 중요하다. 시장에서 배추를 팔든 휴대폰을 만들든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일하느냐가 핵심이다. 인재는 영입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모셔온 인재는 언제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키운 인재는 스스로 알아서 일하고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글로벌 IT사관학교를 계획하고 있다. 입학과 동시에 100% 장학금은 물론, 무료 기숙사 제공과 인턴직원에 해당하는 급여까지 지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는 IT사관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이며, 세계 최고의 석학을 교수로 초빙할 것이다.
 
-직원들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특별한 이유?
 
▶우리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다. 오로지 교육만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 그건 내 경험이기도 했다. 가난하고 못 배웠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달라지고 발전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경영에 관심 갖게 됐을 때 피터 드러커나 잭 웰치 책을 읽을 때면 신이 났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회사 경영을 해야 하는지, 인재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등이 머리에 쏙쏙 저장되었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모토이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나?
 
▶경제적 능력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공장가서 돈 벌어오라’고 했다. 나는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아이스케끼 통을 어깨에 메고 다니며 장사해서 동생들 학비를 벌곤 했다. 그래도 난 그때가 행복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내가 드리는 용돈을 받으시지 않는다. 미안해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당시 아이스케끼 장사할 때는 돈 대신에 주로 빈병을 받고 팔았기 때문에 장사를 끝내고 돌아올 때는 여지없이 빈병을 담은 무거운 자루를 어깨에 메고 왔다. 그래서 어깨에는 늘 피멍이 들어 있었는데 잠잘 때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용돈을 드리고 있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세계가 주목하는 신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가난했고 못 배워서 성공하기 더 좋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못 배웠기 때문에 부족했고, 그래서 항상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1평짜리 감옥에 갇혀서도 마음을 비우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원동력이었다. 내가 꿈꾸는 창조적 도약을 위한 혁신적 사고는 옥중에서 흘린 눈물과 땀방울로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내가 너무 부족한 존재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경영을 맡아 줄 회사 CEO도 훌륭한 분으로 영입할 계획이다. 요즘도 나는 영어 단어를 외운다. 사람들은 ‘영어 쓸 것도 아니면서 왜 외우느냐’고 한다. 시간은 공부를 해도 가고 안 해도 간다. 그러면 하는게 낫지 않나?
 
나는 감옥에서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중ㆍ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지금도 대학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다. 가슴이 아리고 힘든 시간에는 붓을 들고 심신을 달래며 묵향의 위로도 받았다. 옥중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갖고 신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는데 그런 내가 어찌 세상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제 사회에 진 빚을 갚는데 주력할 것이다.
 
▲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월 서울 강남에 마련된 벤처 제품 전시장을 둘러 패스21 윤태식 생체정보기술연구원장으로부터 ‘지문인식에 관한 보안정보시스템’ 기술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자료사진)
내가 신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를 박탈당했어도 끊임없이 도전했던 결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15년 6개월이란 긴 세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접견을 다니면서 지금의 나를 이끌어주고 지탱해주신 매형과 누님의 헌신 때문이라고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하고 싶다.
 
-역경을 이겨내니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이란 말을 제일 좋아한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잘사는 게 현명하고 가장 행복한 것이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방법이 뭔지 아나? 내일 할 일을 오늘 계획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다.
 
-요즘엔 어떤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나?
 
▶내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날이 일 년에 딱 한 번 있다. 옥중에서 거듭난 삶을 살면서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날이라고 고백한다. 특히 나를 믿고 붙잡아 준 ‘가족’들을 생각할 때마다 늘 행복하다.(‘가족’은 내가 옥중에 갇힌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다려 주었고, 늘 격려하며 함께 울어준 사람들이다.)
 
-교수로 추천됐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인데 이사장이 학생들한테 벤처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고 하셔서 검토하고 있다. 그렇지만 난 벤처인으로 끝없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강의할 수 있는 객원교수직을 맡아서 강의할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하며 공부하고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도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다는 것은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에 용기를 얻어 결정했다.
 
-논문집필 문제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저는 검정고시 출신이다. 제가 신기술을 개발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신기술이기 때문에 학술적 뒷받침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신기술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C교수와 논문을 함께 집필하기로 했다. C교수는 자신도 인증기술에 관해 지난 10년 동안 연구하다가 접었는데 제 기술을 보고 자신이 풀지 못했던 부분이 풀렸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그는 학회에 알아보니 제가 학위가 없어도 논문 제1저자가 가능하다고 해서 C교수는 제2저자로 했었는데 며칠 후에 다시 학회에 알아보니 제가 학사학위가 없어서 제1저자가 될 수 없다고 해 C교수가 제1저자, 제가 제2저자로 순위를 변경했다. 
 
그런데 한 달이면 집필이 가능하다고 말했던 분이 수시로 말을 바꾸더니 급기야 지난 12월 2일에는 제가 제2저자도 될 수 없어서 자신의 이름으로만 논문을 발표할 수밖에 없다고 하여 저는 결국 투자자들한테 양치기 소년이 됐고, 신뢰가 땅에 떨어져서 이달 중으로 투자받기로 결정된 것도 취소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 기술 노하우를 모두 파악한 C교수는 자신의 단독 논문으로 욕심을 부리는데 참으로 슬프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제가 배우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논문 컨설팅 학원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제가 공부해서 논문을 직접 쓰려고 한다.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또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면서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저한테는 매우 씁쓸한 교훈이다. 이제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싶다. 모든 진실은 하나님이 아실테니까... 저는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 어려움을 이겨내고 투자자들과 오해도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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